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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24회 작성일 25-03-02 14:29
전문예술인정보
서양화, 추상화
  • 성명(실명) : 김환기(金煥基)
  • 호/필명(예명) : 수화(樹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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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이력

1913년 2월 27일  전남 신안군 안좌면 읍동리에서 일남사녀 중 넷째로 태어남. 부친 김상현(金相賢)은 근동에 알려진 지주.
1933년  도항. 일본대학 예술학원 미술부에 입학.
1934년  아카데미 아방가르드 조직에 참여. 연구생으로 있으면서 후지다 쓰구지, 도고 세이지등으로부터 지도를 받음.
1935년  광풍회(光風會), 백일회(白日會)에 각각 입선. 이과전(二科展)에 <종달새 노래할 때>로 입선. 백만회(白蠻會)조직. 첫 전시에 수십 점 출품.
1936년  백일회에 <중야(中野)풍경> 입선. 백만회에 수십 점의 작품 출품. 이과전에 <25호실의 기념> 입선. 같은 해 겨울. 이과전 9호실 작가전(통칭 九室會)에 출품.
1937년  백만회에 열다섯 점 출품. 동경 아마기(天城) 화랑에서 첫 개인전. 개인전을 끝내고 귀국. 자유미술가협회 창립전에 회우(會友)로 참여. <항공표지>출품.
1938년  자유전에 <론도><아리아><백구> 석 점을 출품.
1939년  자유전에 <향(響)><여(麗)> 출품.
1940년  자유전에 <창><섬 이야기> 출품. 자유전의 경성전에 <섬의 이야기><정물><풍경 1><풍경 2><아타미 풍경><실내악> 출품. 이때부터 자유전이 미술창작가협회로 이름이 바뀜. 정자옥(丁子屋) 화랑에서 개인전. 1941 「미술창작전」에 <바다 A><바다 B>와 또다른 <바다 A><바다 B> 출품. 이 전시를 끝으로 「미술창작전」에서 탈퇴.

1944년 5월  서울의 일본 기독교청년회관에서 고희동(高羲東)의 주례, 정지용(鄭芝鎔), 길진섭(吉鎭燮)을 청첩인으로 해서 김향안(金鄕岸)과 결혼.
1948년  서울대 예술학부 미술과 교수, 일년 후 사퇴. 영영국, 이규상과 더불어 신사실파 창립. 화신사랑에서 1회전. <꽃가게><산><달밤>등 열 점 출품.
1949년  「국전」창설. 1회전에 서양화부 추천작가 겸 심사위원으로 참여. <정일(丁日)>출품. 동화화랑에서 신사실파 2회전을 엶. 새로 장욱진(張旭鎭) 가듬.
1951년  부산으로 피난. 해군 종군화가단원.
1952년  피난 온 홍대에 미술과 교수로 부임. 부산 남포동 뉴서울다방에서 개인전. <진해풍경><파잣집><달밤> 등 출품.
1953년  3회「신사실파전」에 <봄><불상> 등 여덟 점 출품. 신사실파엔 새롭게 이중섭, 백영수가 회원으로 가담. 「신사실파전」은 3회를 끝으로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함. 서울 수복. 다시 성북동에 자리잡음. 2회「국전」에 <호월(壺月)> 출품. 추천작가 겸 심사위원.

1954년  미공보원(USIS)에서 개인전. <꽃><산><항아리><창><섬에서><월매>등 열두 점 출품. 「국전」에 <달><항아리> 출품. 추천작가 겸 심사위원.
1955년  국전에 <하늘><산> 출품. 추천작가 겸 심사위원.
1956년  동화화랑에서 개인전(도불전),<학><여인과 항아리> 등 스물다섯 점 출품. 5월, 파리로 떠남. 파리 베네지트 화랑에서 갱니전. 이탈리아 피렌체 단테의 집에서 「파리의 예술가전」에 다섯 점의 작품 출품.
1957년  파리에서 제작한 작품 <영원의 노래><정원><봄>등 스무 점으로 베네지트 화랑에서 개인전. 니스 무라토르 화랑에서 <달><새> 등 스물다섯 점으로 개인전. 브뤼셀의 슈발드베르 화랑에서 <나는 새> 등 마흔 점으로 개인전.
1958년  파리 앵스티튀트 화랑에서 <봄><무제> 등 스무 점으로 개인전.
1959년  귀국. 서울 중앙공보관 화랑에서 <산월><달밤의 사슴><영원의 노래>등 마흔 점으로 귀국전. 서울 반도 호텔 내에 있었던 반도화랑에서 <달과 산><달과 호수> 등 삼십여 점의 과슈로 개인전. 「국전」에 〈산월풍경〉출품. 추천작가 겸 심사위원.

1961년  중앙공보관 화랑에서 〈야상곡(야상곡)〉시리즈,〈산〉시리즈의 유화와 과슈 수십 점으로 개인전. 홍익대 미술학부장.
1962년  중앙공보관 화랑에서 달을 주제로 한 작품전. 예총 부이사장에 피선, 대학 정비령에 의해 홍익미술대학이 되면서 초대학장이 됨.
1963년  새로 통합된 미술 단체인 한국미술협회의 회장으로 피선, 중앙공보관 화랑에서 「김환기 데생전」개최. 한국미술평론인회 창립에 참여, 「상파울로 비엔날레」출품작 가로 〈섬의 달밤〉등 세 점 출품, 회화 부문 명예상, 10월에 뉴욕 도착.

1964년  뉴욕 아시아 하우스에서 개인전.

1965년  8회「상파울로 비엔날레」특별실에 초대. 열넉 점의 작품 출품.

1966년  뉴욕 타스카 화랑에서 개인전. 〈밤의 소리〉〈하늘〉등 유화 스무 점이위의 유채 다섯 점 출품.

1968년  뉴욕 고담 서적화랑에서 개인전. 〈밤의 소리〉〈하늘〉등 유화 스무 점, 종이 위의 유채 다섯 점 출품.

1969년  달라스 시의「미국 내의 아시아계 화가전」에 참가.

1970년  한국일보 주최「한국미술대상전」에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로 대상 수상. 경복궁 미술관에서 전시.

1971년  포인덱스터 화랑에서 개인전. 전면점화의 대작들 출품. 서울 신세계 화랑에서 종이 위의 유채 작품 마흔다섯 점으로 개인전. 뉴욕으로 떠난 후 최초의 국내전.

1972년  코네티컷 주에서 열린「실버마인 길드전(The silvermine Guild of Artists)」에 출품. 바이텀(Vitam)상 수상. 포인덱스터 화랑에서 개인전.

1973년  포인덱스터 화랑에서 개인전.〈하늘과 땅〉〈십만 개의 점〉등 대작

1974년  루이지애나 수레브포트의 반웰(Barnwell) 아트 센터에서 유화 넉 점, 종이 위의 유채 마흔 점으로 개인전. 뉴욕의 포트체스터에 있는 유나이티드 병원에서 입원 가료중 뇌일혈로 운명. 향년61세. 사후 1975년에 뉴욕 포인덱스터 화랑에서 회고전이 열린 이후,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상파울로 비엔날레」특별초대회고전, 동경화랑회고전(1977), 현대화랑회고전(1977)등이 잇달아 열림. 1984년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10주기 회고전」,1987년 파리 국립조형 예술센터에서의「김환기 뉴욕10년전」등을 비롯 수 차례에 걸친 회고전 등이 기획. 1992년엔 서울 부암동에 환기미술관이 건립되어「김환기 뉴욕 1963-1974」전을 비롯,「영원의 노래」(1993, 김환기 탄생 80년 기념),「김환기 장정과 삽화」(1993),「수화와 향안 50년」(1994),「김환기 20주기 기념전」(1994),「김환기·십자구도전」 (1995)이 이어짐.

자기소개
한국적인 정취를 선명하게 드러내면서도 세계인이 공감하는 조형미와 색감을 지닌 작품세계를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과 명상의 세계로 이끈 김환기는 전통미를 현대화한 세련된 화면구성으로 민족정서와 자연을 추구한 '조형 시詩'를 창조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1930년대부터 가장 전위적인 활동의 하나였던 추상미술을 시도, 한국의 모더니즘을 리드하였으며, 1950년대에 이르러 산, 강, 달 등 자연을 주소재로 밀도 높고 풍요로운 표현으로 한국적 정서를 아름답게 조형화 하였다.

김환기의 예술은 1956년부터 1959년까지 약 3년여의 파리시대와 아울러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수상한 1963년에서 작고한 1974년에 이르는 뉴욕시대에 더욱 왕성한 활동을 보여준다. 파리시대와 서울시대를 포함한 1950년대까지 그의 예술은 엄격하고 절제된 조형성 속에 한국의 고유한 서정의 세계를 구현하였으며, 1960년대 후반 뉴옥시대에는 점, 선, 면 등 순수한 조형적 요소로 보다 보편적이고 내밀한 서정의 세계를 심화시켜 전면점화(全面點畵)라고 불리는 명상적인 시詩적 공간으로 숭고한 추상의 세계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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