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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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28회
작성일 25-03-02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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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 1944년 선전(현재의 국전) 입특선 14회
1960년 이후 국전심사위원 4회
1960년 목포문화상
1976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1982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목포시민의 상
1983년 대한민국 예술원원로회원
1984년 영국 캠브리지 대학 국제저명인사전기편에 수록
1985년 남농기념관 준공
1907. 06. 12 ∼ 1987. 11. 05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에서 조선시대 헌종때 궁중 화가였으며 시와 글씨, 그림에 뛰어나 '시 · 서 · 화' 삼절이라 불리던 소치 허유(또는 허련)선생의 손자로, 화가인 미산 허형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만 해도 화가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낮았기 때문에 그의 집안은 매우 어려웠다고 한다. 그 후 강진을 거쳐 목포에 이사 온 이후에도 궁핍한 생활은 여전하였으나 1925년 북교초등학교 졸업, 1927년 목포상업전수학원을 졸업하고 일생 동안을 목포에서 그림에만 정진하였는데, 소치의 화맥을 정통으로 이어받아, 남농 당대에 한국적 남종화의 세계를 독창적으로 개척하므로서, 우리나라 화단에 불멸의 발자취를 남기었고, 후진양성에도 힘을 기우려 중앙 화단에 중진 작가를 무수히 배출하였다.
목포시의 문화 발전을 위해 9년 동안 예총 목포 지부장을 지냈고, 특히 소치 가문의 유품과 서화 소장품을 비롯해서 평생 동안 모아온 수석들을 목포시에 기증하여 지금의 향토 문화관 건립에 기초가 되게 하였다. 현재 목포시 용해동 갓바위 문화 벨트에 남농 기념관이 설립되어 있으며, 이곳에는 그의 예술 세계를 살펴보고자 하는 후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에서 조선시대 헌종때 궁중 화가였으며 시와 글씨, 그림에 뛰어나 '시 · 서 · 화' 삼절이라 불리던 소치 허유(또는 허련)선생의 손자로, 화가인 미산 허형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만 해도 화가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낮았기 때문에 그의 집안은 매우 어려웠다고 한다. 그 후 강진을 거쳐 목포에 이사 온 이후에도 궁핍한 생활은 여전하였으나 1925년 북교초등학교 졸업, 1927년 목포상업전수학원을 졸업하고 일생 동안을 목포에서 그림에만 정진하였는데, 소치의 화맥을 정통으로 이어받아, 남농 당대에 한국적 남종화의 세계를 독창적으로 개척하므로서, 우리나라 화단에 불멸의 발자취를 남기었고, 후진양성에도 힘을 기우려 중앙 화단에 중진 작가를 무수히 배출하였다.
목포시의 문화 발전을 위해 9년 동안 예총 목포 지부장을 지냈고, 특히 소치 가문의 유품과 서화 소장품을 비롯해서 평생 동안 모아온 수석들을 목포시에 기증하여 지금의 향토 문화관 건립에 기초가 되게 하였다. 현재 목포시 용해동 갓바위 문화 벨트에 남농 기념관이 설립되어 있으며, 이곳에는 그의 예술 세계를 살펴보고자 하는 후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